16세 류혁(柳爀) 6대(代)의 무과급제(武科及第)
16세 | 爀 | 혁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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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 仁 喆 | 인철 | 宅 喆 | 택 철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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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 | | 曮 | 엄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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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 | | 昌 根 | 창 근 | 命 根 | 명 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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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 | | | 琡 | 숙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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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 | | | 光 秀 | 광수 | 觀 秀 | 관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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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 | | | 章熙 | 장희 | 完 熙 | 완 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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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무과급제자 계보도 |
16세 류혁(柳爀)은 양지현감을 하고 전양부원군 용인파의 양지 정착 계기를 마련한 14세 류언(柳遃)의 손자(孫子)이다.
류혁의 6대(代) 무과급제자는 16세 혁(爀)을 비롯하여 17세 택철(宅喆), 18세 엄(曮), 19세 창근(昌根), 20세 숙(淑), 21세 광수(光秀), 관수(觀秀) 형제, 22세 장희(章熙), 완희(完熙) 종형제 총 9명이며 그 계보도는 우(右)와 같다.
여기서 완희(完熙)는 족보(族譜)에 의한 기록이며, 이외의 선조님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에 기록이 전해오고 있다.
혁(爀)은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훈련원주부, 도총부 도사ㆍ경력, 훈련원정, 대구영장, 내금장, 첨지, 길주목사 등을 하고 전라병마절도사를 하였다.
택철(宅喆)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하지 않았으나 손자 창근이 충청병사가 되어 좌승지에 추증되었고, 엄(曮)은 자(字)가 태승(泰昇)이며,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훈련원판관, 정평부사, 전주영장, 오위장, 숙천부사, 금해부사 등을 하였는데 아들 창근이 충청병사가 되어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승정원일기 헌종12(1846)년 1월 18일에 “故府使柳曮贈兵參訓都例兼, 故及第柳宅喆贈左承旨, 以上忠淸兵使柳昌根兩代”라 하여 충천병사 류창근 양대의 벼슬이 추증된 것이다.
창근(昌根)은 무과에 급제하여 副司果, 訓鍊院主簿, 宣傳官, 孟山縣監, 鐵山府使, 충청도 병마절도사, 평안도 병마절도사(平安道兵馬節度使)를 하였다. 숙(琡)은 무과에 급제하여 전라좌도 수군 절도사(水軍節度使)를 하였다.
광수(光秀)는 무과에 급제하여 첨지겸사복장, 위원군수(渭原郡守)를 하였고, 관수(觀秀)는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하였다. 장희(章熙)는 무과에 급제하여 부사맹, 상호군, 의금부 도사, 내섬시 주부, 돈녕부 도정, 선전관 등을 하였고, 완희(完熙)는 무과에 급제하였다.
좋은 자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