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 소(墓 所)

    묘 소(墓 所)

    유해(遺骸)나 유골을 묻은 장소를 말하며, 묘(墓), 분묘(墳墓), 무덤이라고도 한다. 묘소는 시신(屍身)이나 유골(遺骨)을 처리하는 장소인 동시에 제사(祭祀)를 지내기 위한 장소이나 화장(火葬)의 경우 시신(屍身)처리장인 화장터는 묘소와 구별된다.

    사원(寺院) 등에 설치된 위패당(位牌堂)이나 영묘(靈廟), 가정에 모시는 불단(佛壇), 납골당, 공양탑 등은 제사를 위한 것이므로 묘소라고 하지 않는다. 묘소는 한 민족의 생명관, 내세관 등 문화 전체의 양상을 반영하며, 시대·계층·종교에 따라 다르고 외래문화의 영향을 받아 변하기도 한다.

    가. 우리나라의 묘소

    우리나라에서 구석기나 신석기시대의 묘소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으나, 청동기시대 이후는 속속 발견되고 있다. 청동기시대의 묘소는 토장묘(土葬墓, 구덩무덤)와 토광묘(土壙墓, 널무덤) 등 토총 계통과 고인돌, 석관묘(石棺墓, 돌널무덤) 등 석총 계통까지 발견되고 있다.

    토장묘는 가장 전통적이고 기본적인 묘소의 형태이다. 토광묘는 중국의 묘소 양식인데 청동기 중엽 이후 한반도에 들어와서 지배층의 묘소에 많이 사용되었다.

    고인돌 역시 청동기시대에 한반도 전역과 연·근해의 섬에 이르기까지 분포하는 보편적 묘소 형식으로서 고인돌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수효가 많다.

    석관묘 분포지역과 부장품은 고인돌과 비슷하다. 이 시기의 묘소와 부장품들은 다른 지역과의 문화교류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삼국시대의 묘소는 토광묘, 석관묘, 적석총(積石塚, 돌무지무덤) 등이 주로 쓰였다.

    고구려와 신라에서는 적석총, 백제에서는 토광묘, 석실분(石室墳, 돌방무덤)이 주류를 이루었다. 고대의 묘소 중 남아 있는 것들은 주로 지배계층의 것으로서 규모가 크고 금관 등 금·은·옥의 각종 장신구가 출토되어 당시 생활모습과 건축기술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는 불교의 융성으로 화장이 성행하여 화장묘가 발달하였다. 따라서 화장묘의 형식인 부도(浮屠)나 탑에 안치한 골호(骨壺, 뼈단지) 등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화장과 함께 묘소의 축조도 병행되었는데 초기에 축조된 왕릉은 대형분과 같은 규모인 원형봉토분들이었으나 후기로 갈수록 규모가 작아졌다.

    형태상으로는 묘소 주변에 호석을 두르고 비를 세우는 등 중국의 천자능을 축소한 것 같은 모습으로 발전하였다. 고려시대에는 횡구식석실(橫口式石室, 앞트기식돌방), 석관묘, 회곽묘(灰槨墓) 등이 채용되었고, 간혹 화장묘도 보인다. 분구는 원형·직사각형의 토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고려시대 묘소의 특징은 풍수사상이 철저히 지켜졌고, 부장품이 적어진 것이다. 이 시기의 부장품은 금·은·옥 등으로 만든 장신구가 거의 없고 그 대신 동경(銅鏡, 청동거울)과 자기(瓷器)가 들어갔는데, 이는 불교의 생활화와 북방계문화의 영향을 반영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묘소는 화장묘가 사라지고 중국식 토광묘가 일반적으로 많이 쓰였다. 묘지 위치선정에는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 다는 뜻을 지닌 장풍득수 사상 즉, 풍수사상이 보편화되었다.

    묘소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물이 흐르며, 좌측으로는 청룡(靑龍), 우측으로는 백호(白虎)를 나타내는 좌청룡우백호(左靑龍右白虎)가 묘소보다 약간 높게 위치한 곳을 명당으로 여기고 있으며, 이것은 땅의 좋은 기운(氣運)인 지기(地氣)가 뭉쳐있는 곳에 묘소를 써서 좋은 지기를 받고자 하는 것이다. 부장품은 백자 등의 자기가 애용되었다.

    외형은 조선 초기의 원형·직사각형에서 중기 이후는 거의 원형으로 되었으며, 묘소 양옆에는 망주석(望柱石), 석인(石人)을 세우고 또한 묘소 앞에는 제물을 놓기 위한 상석(床石)을 설치하고 신도비(神道碑), 묘비(墓碑)를 세우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합장(合葬)을 할 경우는 남편을 오른쪽에, 부인은 왼쪽에 묻는데 이는 사자(死者)를 중심으로 한 것이며, 묘를 바라보는 사람은 정반대가 된다. 개항(開港) 이후의 묘소는 조선시대의 유교적 매장법을 계승하여 원형토광묘가 주류를 이루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정책에 따라 마을의 공동묘지를 이용하기도 했으며, 화장이 권장되기도 하였다. 해방이후도 토광묘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묘소를 쓰는 데도 공원묘지 등의 이용이 적극 권장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묘소는 원시가족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여기에 외래의 제도·사상·풍습 등이 융합되면서 시대에 따라 변천해왔으며, 한국인의 문화와 조상숭배전통을 잘 반영하고 있다.

    나. 세계(世界)의 묘소

    묘소는 각 사회의 장제(葬制)나 또는 내세관과 깊이 관련되어 있으며, 그 사회의 자연환경과 생업형태, 고인(故人)의 연령과 성별, 사회적 지위나 신분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양하다.

    따라서 묘소의 형태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묘소라 부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매장시설은 구석기시대 프랑스의 라페라시 유적에서 발견된 것으로 성인 남녀와 어린이 등 4구의 인골과 그 주위에 석기와 동물뼈 등 부장품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 묘소가 인위적으로 매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시기의 인류가 묘소나 내세에 관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음을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구석기시대 후기에 들어서면 매장법·부장품이 복잡해진다. 적토(赤土)가 섞인 땅에 시신을 매장하거나 시신에 적토를 칠하거나 또는 시신에서 두개골을 따로 떼어 별도로 매장하는 등의 방법이 나타난다.

    또한 시신의 손발에 돌을 올려놓거나 시신을 돌로 보호하는 등 묘소에 돌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신석기시대 유럽에서 거석문화(巨石文化)로서 독자적인 형태를 취하게 되었는데 고인돌·스톤서클 등 거석을 사용한 묘소가 그 예이다.

    묘소의 변천에서 가장 큰 전환점은 농경사회로의 이행에 따른 정착생활이었다. 석기시대의 이집트에서는 이미 공동묘지가 만들어졌다. 정착생활로 인해 인류는 현재와 같은 영구적인 묘소를 가지게 되었다.

    왕조의 발달로 지배층의 거대분묘가 나타나는 것도 이 시기이며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왕묘 등이 그 예이다. 이들 왕묘는 규모의 거대함, 정교함, 화려한 부장품, 내부 장식에서 강력한 왕권과 발달한 기술문명의 흔적을 엿볼 수 있으며, 시신과 묘소 자체의 장기보존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특징의 하나이다.

    오늘날 묘소의 형태나 습속은 문명사회·전통사회 또는 미개사회라 불리는 지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시신을 땅 속에 묻고 흙을 높이 쌓은 묘소형식이나, 매장한 장소에 묘표(墓標)를 세우는 형식은 불교·기독교·이슬람교 등 대종교를 믿는 지역 묘소의 특징이다.

    대(臺)나 나무 위에 시신(屍身)을 올려놓는 대상장(臺上葬)이나 수장(樹葬)은 북아시아·중앙아시아를 비롯하여 인도네시아·멜라네시아·오스트레일리아·미국 등 각지에서 볼 수 있는데 이들도 묘소의 일종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 시신을 가옥 내부에 매장하는 형태는 아프리카와 인도네시아, 남아메리카의 아마존지역에 흩어져 있으며 또 그 발전 형태인 묘소 위에 오두막을 짓는 풍속도 이 지역을 비롯하여 오스트레일리아·북아시아·미국·동남아시아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동굴장(洞窟葬)의 일종인 벽감묘(壁龕墓)는 아프리카·오스트레일리아 각지에 분포한다. 티베트불교와 인도의 파르시교에서 하고 있는 조장(鳥葬), 멜라네시아·폴리네시아에서 하고 있는 주장(舟葬)은 묘소가 없는 것이다.

    묘소가 어느 곳에 만들어지는가 하는 것은 그 사회의 내세관이나 세계관과 밀접하게 관계된다. 일반적으로 수장(樹葬)과 대상장(臺上葬)은 천상(天上)·태양(太陽)이라는 상방내세관(上方來世觀)과 관계가 있으며, 죽은 사람의 혼이 저 세상에 가기 쉽도록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 석 물(石 物)

    묘소 앞에 돌로 만들어 놓은 물건을 말한다. 그 종류는 망주석(望柱石), 석인(石人), 상석(床石), 묘표(墓表), 신도비(神道碑), 묘비(墓碑), 석등(石燈) 등이 있다.

    1) 망주석(望柱石)

    묘소를 꾸미기 위하여 묘소 앞의 양 옆에 하나씩 세우는 돌기둥을 말하며, 망두석(望頭石), 망주석표(望柱石表), 석망주(石望柱), 화표주(華表柱), 석주(石柱) 또는 망주(望柱)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횃불을 연상시키며, 기둥 중간에 다람쥐 문양이 새겨진다.

    이것은 멀리서 바라보아 묘소를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표지였을 것으로 보이나 어느 시기부터 있었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 된 망주석은 삼국통일 이후의 것으로 보이는 괘릉(掛陵)과 흥덕왕릉(興德王陵)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이후의 능원(陵園)은 물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벼슬아치의 묘소에서도 거의 예외 없이 발견되고 있다. 본래 묘소를 장식하는 석물(石物)은 신분에 따른 규제가 있었다.

    한국은 중국의 광기(廣記), 분영조(墳塋條)의 규정을 준용하여 왔으나 왕조정치가 끝난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이 규정과 관계없이 단순 장식물로서 설치되고 있는데, 망주석도 그러한 모습을 보인다.

    2) 석인(石人)ㆍ인석(人石)

    돌로 만들어 묘소 앞에 세우는 사람의 형상을 말하며, 문인석(文人石), 무인석(武人石), 동자석(童子石)이 있다. 여기서, 문인석은 책을 손에 쥐고 있는 문관(文官)형상, 무인석은 긴 칼을 손에 쥐고 짚고 있는 무관(武官)의 형상, 동자석은 사내아이의 형상으로 만들어 묘소 앞에 세우는 돌이다. 무인석은 무관석, 무석(武石), 무인석, 장군석이라고도 한다.

    3) 석 수(石 獸)

    돌로 만들어 묘소 앞에 세우는 동물을 말하며, 사석(獅石, 돌사자), 마석(馬石), 양석(羊石) 등이 있다.

    4) 상 석(床 石)

    묘소 앞에 제물을 차려 놓기 위해 네모난 돌로 만들어 놓은 상을 말하며, 상돌, 석상(石床)이라고도 한다.

    5) 묘 표(墓 表)

    고인(故人)의 품계, 벼슬, 이름 또는 사적과 덕행을 기리는 내용을 적어 묘소 앞에 세우는 푯돌로서 표석(表石)이라고도 한다.

    6) 신도비(神道碑)

    묘소 앞이나 묘소로 가는 길목에 세워놓은 고인(故人)의 생애에 관한 사항들을 새긴 비(碑)로서 묘소 남동쪽에 남쪽을 향하여 세운다. 한(漢)나라 양진(楊震)의 고대위양공지신도비(故大尉楊公之神道碑)에서 시작되어 종2품 이상의 관직(官職)에 있던 사람이 세웠다.

    우리나라의 신도비는 조선시대 태조의 건원릉신도비(建元陵神道碑)와 세종의 영릉신도비(英陵神道碑)가 있다. 또한 2품 이상에 세우는 것으로 제도화하였으나 문종은 왕릉에 신도비를 세우는 것을 금지하였다.

    한편 공신이나 석유(碩儒) 등은 왕명으로 비를 세우게 하였는데, 전해지는 것으로는 안산(安山)의 정난종(鄭蘭宗) 신도비, 아산(牙山)의 이순신(李舜臣) 신도비 등이 있다.

    7) 비 갈(碑 碣)

    비(碑)와 갈(碣)을 말한다. 여기서 비(碑)는 고인(故人)의 업적이나 사실을 길이 전하려고 돌에 글을 새겨 세워 놓은 것이고 갈(碣)은 비개석(碑蓋石)을 얹지 않고 머리를 둥그스름하게 만든 작은 비석을 말한다.

    비석(碑石)은 일반적으로 비문(碑文)을 새기는 중간 부분인 비신(碑身), 비신 위에 덮는 비개석[碑蓋石, 가첨석(加檐石)이라고도 한다], 비신을 바치고 있는 하부의 대석(臺石, 받침돌)으로 이루어진다.

    묘소에는 머리가 둥그런 묘갈(墓碣), 비개석이 있는 묘비(墓碑) 및 신도비(神道碑)가 세워진다. 비표(碑表)는 비신(碑身)의 앞면, 비음(碑陰)은 뒷면을 말한다. 종류로는 전통적인 용머리 비석, 갓비석, 평비석과 서구적인 빗선와비,일반와비 및 자연석 비석이 있다.

    8) 석 등(石 燈)

    묘소 앞에 돌로 만들어 세운 등을 말하며, 장명등(長明燈) 또는 석등롱(石燈籠)이라고도 한다. 석등의 중대석 위에 있는 등불을 밝히는 부분인 화사석(火舍石), 석등을 밑에서 받치는 하대석(下臺石), 화대석과 하대석 사이의 기둥인 중대석으로 이루어지며, 화사석에는 석등의 불을 켜 놓기 위하여 뚫은 화창(火窓)이 있다.

    9) 호 석(護 石)

    묘소의 봉분(封墳) 둘레에 설치하여 봉분을 보호하는 돌로서 둘레석이라고도 하며, 여기에는 자(子, 쥐), 축(丑, 소), 인(寅, 호랑이), 묘(卯, 토끼), 진(辰, 용), 사(巳, 뱀), 오(午, 말), 미(未, 양), 신(申, 원숭이), 유(酉, 닭), 술(戌, 개), 해(亥, 돼지)의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새겨진다.

     

    10) 묘 지(墓 誌)

    고인(故人)의 이름, 관작(官爵), 행적(行蹟), 자손의 이름, 생몰년월일, 묘지(墓地)의 주소 등을 새겨 관(棺, 널)과 함께 파묻는 돌이나 도판(陶板) 또는 거기에 새긴 글을 말한다. 지석(誌石)이라고도 한다.

    묘소 앞에 세운 묘비(墓碑)와는 달리 오랜 풍우나 인위적(人爲的)인 변화를 막고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서 파묻는다. 묘지(墓誌)의 역사는 매우 길어 아주 오래된 것으로는 고대 이집트의 “사자의 서(書)”가 있다.

    중국에서는 후한(後漢)시대부터 시작되어 육조(六朝), 수(隋), 당(唐)나라 때 가장 성행하였으며, 우리나라의 도입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고려, 조선 시대에 성행하였다.

    11) 혼유석(魂遊石)

    상석(床石)과 무덤 사이에 놓는 긴네모꼴의 돌로서 영혼(靈魂)이 나와서 놀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12) 향로석(香爐石)

    향을 피어 사악한 기운이나 벌레를 물리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석물(石物)을 예를 들면 다음 그림과 같다.

     

                                                

            (1) 연화 비석                  (2) 묘갈                      (3) 갓비석

    - 비석의 형상 -

                                             

                 상석(床石)                       망주석(望柱石)                석등(石燈)

                                                                 

            문인석(文人石)                무인석(武人石)                  양석(羊石)

     

    묘소 각부의 명칭

    라. 묘소 용어

    (碣)

    비개석(碑蓋石)을 얹지 않고 머리를 둥그스름하게 만든 작은 비석.

    걸방석(-石)

    묘소의 상석 뒤를 고이는 긴 돌.

    계절(階節)

    묘소 주의의 평평한 곳.

    계체석(階砌石)

    계절(階節) 끝에 놓은 장대석.

    고석(鼓石)

    묘소 앞의 상석 앞을 고이는 돌. 북 모양으로 생긴 둥근 돌로서 이를 북석이라고도 한다.

    곡장(曲墻)

    예장으로 치른 묘소 뒤에 나지막하게 둘러쌓은 토담.

    구묘(丘墓)

    묘소와 같은 말.

    단갈(短碣)

    묘소 앞에 세우는 상단이 둥근 작은 비석.

    대석(臺石)

    비석의 몸체인 비신(碑身)을 지지하는 돌. 그 생김새에 따라 거북 모양으로 만든 것을 구부 또는 구대라고 하며, 단순히 장방형으로 된 것을 방부(方趺) 또는 평대라고 한다.

    동자석(童子石)

    묘소 앞에 세우는 동자의 석상.

    둘레석

    호석(護石) 참조.

    망주석(望柱石)

    묘소 앞에 세우는 돌기둥. 이를 망두석, 망주석표 또는 화표주라고도 한다.

    묘갈(墓碣)

    묘소 앞에 세우는 비석. 3품 이하의 관리들 묘소 앞에 세우는 머리 부분이 동그스름한 작은 돌비석으로 신도비에 비해 그 체재와 규모가 작다.

    묘계(墓界)

    묘소의 구역. 품계에 따라 묘소를 중심으로 1품은 사방 100보, 2품은 90보, 3품은 80보, 4품은 70보, 5품은 60보, 6품은 50보, 생원․진사는 40보 그리고 서민은 사방 10보로 제한하였다.

    묘막(墓幕)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머무르기 위하여 묘소 근처에 마련된 건물.

    묘비(墓碑)

    묘소 앞에 세우는 비석의 총칭. 죽은 사람의 신분, 성명, 행적, 생년월일, 자손 등에 관한 사항을 새긴다.

    묘사(墓社)

    종묘(宗廟, 역대 제왕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와 사직(社稷:옛날 건국하였을 때 제사지내는 토신과 곡신)

    묘소(墓所)

    유해(遺骸)나 유골을 묻은 장소를 말하며, 묘(墓), 분묘(墳墓), 무덤이라고도 한다. 묘소의 방향이 자좌(子坐)이면 정북을 등지고 있다는 뜻이므로 묘지의 방향은 정남향이 된다. 여기서 좌우(左右)는 사자(死者)를 중심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묘소를 바라보는 쪽에서는 정반대가 되므로 좌는 동(東)쪽, 우는 서(西)쪽으로 보면 된다. 합봉(合封), 합묘(合墓)는 부부를 한 봉분에 합장한 것이고 쌍봉(雙封)은 같은 묘소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두 봉분을 나란히 만든 것이다.

    묘역(墓域)

    묘소를 쓰기 위하여 마련된 지역.

    묘지(墓誌)

    천재지변 또는 오랜 세월이 흐름에 따라 묘를 잃어버리는 것에 대비하여 묘소 앞에 묻는 고인(故人)의 본관, 성명, 생년월일, 행적과 졸년월일 등을 새긴 금속판, 돌 또는 도판(陶板). 지석(誌石)이라고도 한다.

    묘표(墓表)

    고인(故人)의 관직, 이름, 호를 앞면에 세기고 뒷면에는 사적(事績) 또는 비석을 세운 날짜와 자손들의 이름을 새겨 묘소 앞에 세우는 비석이다.

    무관석(武官石)ㆍ무인석(武人石)

    묘소 앞에 세우는 장군(將軍)의 석상.

    문관석(文官石)ㆍ문인석(文人石)

    묘소 앞에 세우는 문인의 석상.

    배계절(拜階節)

    계절(階節)보다 한 층을 낮춰 자손들이 절을 하기 위하여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곳.

    봉분(封墳)

    시신을 매장할 때 묘소를 나타내기 위하여 큰 함지박을 엎어놓은 듯이 봉토를 쌓아올린 것.

    분묘(墳墓)

    묘소의 총칭. 부부가 한데 매장한 것을 합장, 합묘라 하며, 각각 양 옆에 매장된 것을 쌍분이라 한다.

    분상(墳上)

    봉분의 높임말.

    (碑)

    어떤 인물의 공적을 기념하고자 돌에 글자를 새겨서 세워 놓은 것.

    비각(碑閣)

    비석이 들어있는 건물.

    비두(碑頭)

    비석의 몸체 위에 얹는 돌(개석:蓋石). 형상에 따라 용두, 기린두, 봉두, 천록두, 벽사두 연화두 등으로 구분하며, 이것이 없는 것을 규수(圭首) 또는 원수(圓首)라고 한다.

    비명(碑銘)

    비석에 새긴 글. 비문(碑文)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에는 고인(故人)의 성명, 본관, 원적, 성품, 경력 등의 사적(事蹟)을 기술한 것이다. 신도비나 묘갈 등 비석 몸체 머리 부분에 전자(篆字:한문 글씨체의 일종)로 새기는 문자를 두전이라 하며, 비석 앞면에 새긴 문자를 표기(비표명), 뒷면에 새긴 문자를 음기(비음명)라고 한다.

    비신(碑身)

    비석에서 비두와 대석을 제외한 비문을 새긴 몸체 부분. 재료는 대리석(옥석), 애석, 오석, 화강석 등으로 되어 있다.

    사성(莎城)

    묘소의 뒤와 좌우를 병풍처럼 나지막하게 흙으로 둘러쌓은 성루. 속칭으로 토성이라 한다.

    상석(床石)

    묘소 앞에 제물을 차리기 위하여 설치한 상돌.

    석등(石燈)ㆍ장명등(長明燈)ㆍ석등롱(石燈籠)

    묘소 앞에 불을 밝히기 위하여 돌로 등대 형상을 만든 것인데 석등룡 또는 장명등이라고도 한다. 밑에는 긴 받침대가 있고 중대석 위에 있는 점등 부분을 화사석 이라고 한다.

    석마(石馬)

    말의 형상으로 조각된 석상.

    석물(石物)

    묘소 앞에 설치한 석인(石人), 석수(石獸), 석주(石柱), 석등(石燈), 상석(床石) 등의 총칭.

    석수(石獸)

    짐승 모양으로 조각된 석상의 총칭. 마석(馬石), 양석(羊石), 호석(虎石), 사석(獅石) 등이 있다.

    석양(石羊)

    양의 형상으로 조각된 석상.

    석의(石儀)

    묘소 앞에 사람이나 짐승의 형상으로 조각하여 설치하는 석상의 총칭.

    석인(石人)

    사람의 형상으로 조각된 석상. 문인석(文人石)과 무인석(武人石), 동자석(童子石)이 있다.

    석호(石虎)

    호랑이의 형상으로 조각된 석상.

    순전(脣前)

    배계절 앞의 내리바지 언덕.

    신도비(神道碑)

    임금이나 고관의 묘소 앞 또는 길목에 세워 고인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대개 묘소의 동남쪽에 위치하며 남쪽을 향하여 세운다. 신도(神道)는 사자(死者)의 묘로(墓路) 즉, 신령(神靈)의 길이라는 뜻이다. 고려시대에는 3품 이상 관리의 묘에 세운 것으로 보이나 현존하는 것은 없으며, 조선시대에 와서는 2품 이상의 관리들에게 세우는 것을 제도화하였다

    용미(龍尾)

    봉분을 보호하기 위하여 빗물이 봉분의 좌우로 흐르도록 묘소의 꼬리처럼 쌓아 올린 것.

    재각(齋閣)

    묘사의 제사를 위하여 마련된 건물의 총칭.

    재사(齋舍)

    제사를 위하여 마련된 건물의 총칭.

    정자각(丁字閣)

    능원(陵園)의 제향(祭享)을 위하여 마련된 건물의 총칭. 지붕의 용마루나 건물의 평면이 한자의 정(丁)자처럼 생겼다.

    제청(祭廳)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을 위해 지은 건물. 제각(祭閣), 재각(齋閣), 재실(齋室)이라고도 한다.

    준석(樽石)

    묘제 때 술통이나 술병을 올려놓기 위하여 향로석 우측에 설치하는 납작한 돌.

    지석(誌石)

    ⇒묘지(墓誌)

    표석(表石)

    ⇒묘표(墓表)

    향로석(香爐石)

    묘제 때 무덤 앞에 향로(香爐)와 향(香)을 올려 놓는 네모 반듯한 돌로서 향안석(香案石)이라고도 한다.

    호석(護石)

    능원(陵園)이나 공신묘(功臣墓)의 봉분을 둘러쌓은 돌로서 둘레석이라고도 한다. 원형 둘레석은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선호하는 분묘형태로서 12지신[十二支神, 자(子, 쥐), 축(丑, 소), 인(寅, 범), 묘(卯, 토끼), 진(辰, 용), 사(巳, 뱀), 오(午, 말), 미(未, 양), 신(申, 원숭이), 유(酉, 닭), 술(戌, 개), 해(亥, 돼지)] 무늬, 사군자[四君子, 매(梅, 매화), 난(蘭, 난초), 국(菊, 국화), 죽(竹, 대나무)] 무늬 등이 있으며, 지름 2.4~3.9m까지, 2단 형태와, 3단 형태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혼유석(魂遊石)

    상석(床石) 뒤 묘소 앞에 있는 장방형의 작은 돌로서 영혼이 나와서 놀게 하기 위하여 설치하는 것이다.

     

    씨름(김홍도 작)